여성 검도·운동·피지컬 이야기

여자가 남초 격투기•무술 배우기 어려운 이유, 검도에 100% 마음을 쏟지 못한 이유, 왜 우린 운동장에서 멀어지는가, 여성 생활체육인

여여러 2024. 8. 6.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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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https://centurymartialarts.com/products/kendo-armor
 
여자가 남초 격투기•무술 배우기 어려운 이유, 검도에 100% 마음을 쏟지 못한 이유, 왜 우린 운동장에서 멀어지는가
 
2021년 여름에 대한검도회 공인 도장에 등록해 검도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지역에 있는 도장이었는데, 검도 자체가 주짓수처럼 붐이 일고 있는 종목은 아니기에 수련하는 사람은 적었다

 

코로나 시기라 더 그랬다
그중에서도 여성 수련자는 더! 적었다

 

그래도 좋은 사범님, 선생님들께 의지해 열심히 운동을 했다
그렇게 힘들고도 즐거운 활동이 내 삶에 또 있을까 싶다

 

하지만 운동에 100% 몰입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는 분명 있었다
남자보다 힘이 부족해서? 피지컬이나 기초체력에 문제가 있어서? 여자에게 무술은 너무 격한 운동이라서?
모두 아니다 
 
대체로 남초인 도장에서 여성 관원으로서 불쾌했던 경험 때문이다

 

 
사진출처 https://facts.net/lifestyle/sports/12-facts-about-kendo/#google_vignette
 
1. 잦은 술자리, 뒷풀이(권유)
 
이건 내 개인적인 문제이긴 하다
내가 술자리를 그닥 즐기지 않는다
만남 자체가 목적인 동호회가 아니라면 일년에 한두 번 정도의 뒷풀이가 내겐 적당하다

 

하지만 운동 후 맥주 한 잔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즐거워 더욱 열심히 운동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니 이는 융통성있게 각자 판단하면 될 문제다
회사도 아니고 취미생활인데 누가 억지로 권할 수 있겠나
 
또 일부러 챙겨주시는 행동이라 생각하면 감사하기도 하다
(하지만 매번 거절의 말과 핑계를 늘어놓는 것이 편하진 않다)
 
 
사진출처 https://tokyoandaroundtokyo.com/destinations/fukushima/art-culture/

 

사진출처 https://tokyoandaroundtokyo.com/destinations/fukushima/art-culture/

 
1-2. 말실수

 

말실수라고 썼지만 사실 일부 남자 선생님들의 성희롱성 발언에 관한 것이다
이는 실수가 아니라 개인의 아주 나쁜 습관이다
 
운동을 위해 다양한 성별,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성적인 발언 자체를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생각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당연한 상식이다
특정 관원을 지칭하지 않더라도 동석한 이들에겐 그런 말과 행동이 불편할 수 있다
 
이 상식이 평소엔 대체로 잘 지켜진다
하지만 왜인지 술이 들어가면 꼭 선을 넘는 일들이 생긴다(그래서 이 항목을 1-2로 표기했다)
내가 술자리를 으레 피하는 것에도 이런 이유가 있다고 본다
사회생활을 하며 좋지 않은 광경을 많이 목격했고, 매번 술이 기폭제 역할을 한다는 걸 내 몸이 이미 알고 반응하는 듯하다 
 
2. 선을 넘음
 
난 도장의 선생님들을 모두 좋아한다
검도를 향한 순수한 열정, 후배 관원들에게 아낌 없이 운동 요령을 알려주려는 그 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하지만 가끔, 정말 가끔 여성 관원들에게 선을 넘는 이들이 있다
인물이 특정될 것 같아 자세히 말할 수는 없으나 상당히 불쾌한 연락을 지속하던 분이 있었다
맹세코 말하건데 난 그분과 또래도 아니고, 먼저 연락한 적도 없고, 도장에서 먼저 말을 건 일도 거의 없다
 
이런 일련의 일을 회상하다 보니 최근 민희진씨의 기자회견이 떠오른다
여자가 사회생활하기가 이렇게 더럽구나... 라고 한탄하셨는데
나는 '여자가 격기종목 하나 배우기가 이렇게 어렵구나...'라고 바꿔 말하고 싶어진다
 
수련인원이 적은 비인기 종목은 더욱 그러하다
여성관원이 적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https://shotengai.com/blogs/magazine/kendo-japanese-martial-art-of-sword
 
전하고 싶은 말
 
여성 관원들이 친절하고 살갑게 남성 관원을 대하는 건 그들을 이성으로 생각해서가 아니다
함께 수련하는 선생님들이 감사하고 정겨워서 그런 것이다
여러 사람이 모인 곳이니 연애 감정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미혼 또래 젊은이들간의 이야기다

 

비상식적인 연락, 호감표현, 성희롱성 발언 등은 안그래도 귀한 여성 관원들을 도장 밖으로 쫓아내는 행위나 다름 없다
특정 종목의 부흥을 바란다면, 특히 검도 같은 마이너 종목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길 바란다면
이런 일은 절대 없어야 할 것이다
 
내가 겪은 일이 내 개인적 경험이길 바란다
다른 도장에서도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은 아니길...(설마요)
 
글을 읽으면서 '그럼 여성반이나 여성 전용 도장에 가세요'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무술이나 격기종목은 여성반이 잘 없다
여자 관원 자체가 귀하다니까요?! 
 
검도대회만 봐도, 남자는 연령대별로 세세하게 출전 요건이 나눠져 있지만 여자들은 여성부 하나로 퉁치는 경우가 많다
지방은 더욱 그렇다
 
그리고 여성, 남성 함께 수련해야 더 다양한 케이스를 경험할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한다
체격이나 힘이 상대적으로 작다고 해서 민폐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가르치는 것 자체를 즐기는 관원도 많고 이 역시 상호간에 도움이 되는 경험이므로.
검도는 체급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 종목이라 더 그렇다 

 

남자든 여자든 함께 운동하는 건 언제든 대환영이다
그저 서로의 사적 영역만 침범하지 말자

 

사진출처 https://islandpacificacademy.org/japanese-martial-art-kendo-ipa/

 

 

 

그럼에도 여성으로서 검도가 좋은 이유
 
이런 일련의 사건에도 여전히 검도를 사랑하는 이유, 검도의 매력에 푹 빠진 이유, 도장을 사랑하게 된 이유... 
여성으로서 운동을 하고 생활체육인이 된다는 게 너무 좋아서였다
 
도장에서는 (운동할 때) 운동의 관점으로만 서로를 판단한다
피지컬이 얼마나 강한지, 기술이 얼마나 좋은지 등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여자에게 요구하는 마른 체형, 예쁜 얼굴 등은 도장에서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기세가 중요하며, 더 강해지길 요구할 뿐이다
검도 같은 무술, 격기종목은 더욱 그렇다

 

이것은 여성인 내 삶에 굉장히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 짜릿함 덕에 아직도 운동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듯하다
 
운동에서 점점 멀어지던 어린시절을 떠올려본다
남자아이 여자아이 함께 어울리던 운동장은 사춘기 무렵을 기점으로 남자아이들의 차지가 되었다
여자아이들에게 격한 축구나 농구를 할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도 않았고,
외모에 관심을 쏟는 또래들의 분위기를 따라 점점 뜀박질을 하지 않게 되었다
생리를 하고 가슴이 나오며 운동이 불편해진 것도 있다
체육시간이면 가슴 때문에 남학생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고,
얼굴이나 머리모양이 망가지는 것도 굉장히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여학생들의 외모강박이 조금 덜할 수 있는 사회였다면,
여학생에게도 농구와 축구를 맘껏 권하는 사회였다면 내 신체능력도 좀 달라졌을까?

 

사진출처 https://centurymartialarts.com/products/kendo-armor

 
그래도 성인이 되어 나의 의지로 운동에 푹 빠질 수 있게 된 지금이 행복하고 감사하다
2030 또래 여성들에게도 꼭 유도, 검도, 주짓수 등 격투기 종목 도장에 나와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언제나 좋을 수만은 없겠지만 그래도 벅찬 순간이 훨씬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한 소리지만, 배려심 넘치는 남성 관원들이 훨씬 많습니다!
위에 쓴 사례가 일반적인 경우였다면 저는 진작 운동을 그만두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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